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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by 아침햇살70 2025. 7. 3.

2020년에 개봉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범죄 느와르 스릴러 장르의 정수를 보여준다. 일본 작가 손원평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한 가방 속 현금 5천만 원을 중심으로 인물들의 탐욕이 교차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누구나 삶의 벼랑 끝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이 작품은 인간이 처한 극한의 상황에서 도덕성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를 묻는다.

등장인물은 모두 '짐승'이 된다

이 영화에는 선한 인물이 없다. 혹은, 선한 척하는 인물은 있어도 끝까지 도덕적 기준을 지키는 인물은 없다.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절박한 사연을 품고 있지만, 그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하나같이 '옳음'과는 거리가 멀다.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위해 허덕이는 태영(정우성),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는 미란(전도연),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준만(배성우),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기점을 만들어낸 연희(신현빈)까지. 이들은 모두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점점 더 비열한 선택을 하게 된다.

관객은 처음에는 이들의 상황에 공감하지만, 점차 그들의 행동이 상식을 벗어나며 ‘동정에서 혐오로’ 감정이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현금 가방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모든 갈등의 출발점은 ‘가방’이다. 그 안에 든 돈은 구원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파멸을 부르는 상징이다. 영화는 한 줄기 희망으로 보이는 지푸라기가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이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푸라기 같은 돈은 인물들에게 두 가지를 드러낸다. 첫째, 그들의 궁핍한 현실과 절박함. 둘째, 그 절박함이 드러내는 인간의 밑바닥 본성이다. 결국 돈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을 시험하는 장치다. 누가 어디까지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혹은 누가 더 빨리 무너지는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구조와 서사, '퍼즐 맞추기'의 미학

영화는 비선형적 구성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순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시점을 교차하며 반복하고, 같은 장면을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체 퍼즐을 서서히 완성해간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에게 이야기의 전말을 한 번에 전달하지 않고, 조각조각 흩어진 정보를 통해 진실에 다가서게 만든다. 단순한 범죄극을 넘어선 이 연출은 도덕적 판단을 유보시키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이 인물은 악인일까, 피해자일까?”라는 모호한 시선을 끝까지 유지하게 만든다.

왜 인간은 끝까지 추락하는가

이 영화의 인물들은 선택의 순간마다 '선을 넘는다'. 그리고 그 선을 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랑, 생존, 복수, 두려움… 하지만 그 어떤 명분도 결국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가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도덕을 지킬 것인가, 이익을 취할 것인가. 대다수는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당신도 정말 다를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관객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결국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단지 범죄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의 윤리적 선택에 대한 실험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생존 압박, 경제적 절망이 어떻게 인간을 변하게 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절망적이다. 해피엔딩도 없고, 구원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진실하다. 때로는 현실이 이보다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남은 질문

영화를 본 후, 나는 생각했다. “나라도 그 상황에서 다르지 않았을까?” 하지만 동시에, 나의 선택이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다시 깨달았다. 인간은 누구나 짐승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의식적으로 살아야 한다.

돈 앞에 무너지는 인간, 선택의 윤리, 그리고 그 이면의 추락.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불편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질문을 던진다.

결론: 지푸라기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지푸라기를 붙잡는다. 그것이 우리를 살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푸라기가 오히려 우리를 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결국 영화는 말한다.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그것이 돈이든, 사람의 손이든, 혹은 스스로의 양심이든. 그 선택이 우리를 짐승으로 만들지, 사람으로 남게 할지를 결정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