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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 백야의 공포, 한여름에 핀 악몽

by 아침햇살70 2025. 7. 17.

‘여름’ 하면 우리는 흔히 밝고 따뜻한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햇살, 휴가, 사랑, 해변, 축제... 그러나 영화 <미드소마>(Midsommar, 2019)는 이런 전형적인 여름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틀어, 가장 눈부신 계절 한가운데서 가장 서늘한 공포를 경험하게 한다. 백야의 축제 속에 숨겨진 잔인한 진실.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한여름의 악몽이다.

끝나지 않는 낮, 숨 쉴 틈 없는 불안

보통 공포영화는 어두운 밤, 스산한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미드소마>는 예외다. 이 영화의 공포는 빛으로부터 시작된다. 스웨덴의 한 외딴 마을에서 펼쳐지는 90년마다 한 번 열리는 축제. 해는 지지 않고,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 밝음 속에는 어떤 비정상적인 기운이 숨어 있다. 오히려 너무 밝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그 불안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강도를 높인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시각적인 대비를 통해 관객에게 이질감을 선사한다. 꽃으로 장식된 의상, 초록 들판, 해맑은 마을 사람들. 그 속에 서서히 스며드는 기괴한 전통과 끔찍한 의식들.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는 이유는, 그것들이 너무 평온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익숙한 여름 풍경 속에 섞인 낯섦과 광기, 그것이 <미드소마>의 핵심이다.

상실의 고통과 심리적 분해

주인공 대니(플로렌스 퓨)는 가족을 모두 잃은 트라우마 속에서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흔들리는 상태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영화는 그녀의 내면 심리를 외부 세계와 절묘하게 맞물리게 한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의식들은 단순한 이상한 풍습이 아니라, 대니가 겪는 감정의 또 다른 은유처럼 보인다.

결국 <미드소마>는 전통적인 공포영화의 구조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더 깊은 심리적 공포를 전달한다. 외부의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너지는 자아와 그것을 지켜보는 타인의 무심함이다. 대니는 마을에서 점점 동화되어가며 기존의 세계와의 연결을 끊는다. 그 과정을 통해 관객은 점점 더 불편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공포는 반드시 어둠 속에만 있는가?

<미드소마>는 우리가 가진 공포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밝고 평화로운 환경에서도 인간은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으며, 집단은 얼마든지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이 ‘문화’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우리는 그것을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들도 단 한 점의 어둠 없이 진행된다. 햇살이 비치는 벌판 위, 모두가 웃고 노래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희생. 어쩌면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사람들의 표정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다. 그것은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인간 내면의 집단 심리에 대한 탐구다.

한여름에 핀, 불편한 해방

대니는 결국, 사랑도 가족도 모두 잃은 채, 마을에 ‘귀속’된다. 그녀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웃음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광기의 징후일까, 혹은 진정한 해방일까. 관객은 대니의 표정을 통해 어떤 심정을 느끼게 되는가? 슬픔인가, 해방인가, 혹은 공포인가?

<미드소마>는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감정, 특히 상실과 고립, 애착의 불안정성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심리극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여름이라는 ‘낯익은 계절’에 빗대어 뒤틀림을 만들어낸다. 여름은 언제나 설렘의 계절이지만, 그 설렘의 끝에는 어쩌면 낯선 그림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맺으며: 여름의 공포, 우리 안의 불편함

<미드소마>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 악몽 같은 이야기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공포는 어둠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환한 순간에, 우리 안에 가장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이기에 더 무서운 이야기. <미드소마>는 그 역설 속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