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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상처는 어디에 머물까

by 아침햇살70 2025. 7. 2.

<드라이브 마이 카>는 2021년 일본 영화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연출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제74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포함한 다수의 국제영화제를 휩쓸었다. 이 영화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상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조용한 물음이다.

차 안에서만 드러나는 진심

주인공 가후쿠는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다. 그는 아내 오토를 갑작스럽게 잃고, 여전히 그녀와의 기억에 갇혀 있다. 오토는 생전에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었지만, 가후쿠는 그 사실을 묵묵히 품고만 있었다. 사랑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가까웠지만 결코 닿지 못했던 거리감은 상실 이후 더욱 깊어진다.

연극 페스티벌에서 운전기사 미사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조금씩 자기 내면의 감정을 마주한다. 미사키 또한 어린 시절 어머니의 학대와 죽음을 겪으며 마음속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말수가 적지만, 차 안에서는 가장 솔직해진다. 그 공간은 마치 ‘이동하는 고백실’처럼, 감정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기능한다.

침묵과 여백의 미학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한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대신, 긴 침묵과 시선, 반복되는 일상 속 행위들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암시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서구의 정서와는 다르게, 일본 특유의 정중하고 절제된 정서를 담아내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극 중에서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은 안톤 체호프의 <벚꽃 동산>이다. 이 연극은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이 선택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영화와 연극은 서로 반사하며, 주인공의 정서와 감정적 격동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다양한 언어(한국어, 일본어, 수어 등)로 진행되는 멀티링구얼 연극은 이해의 불가능성을 주제로 삼으며, 사랑과 소통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운전석이라는 은유

가후쿠는 오랫동안 직접 운전하는 것을 고집해왔지만, 행사 규정상 운전기사 미사키에게 운전대를 맡긴다. 타인의 손에 인생의 방향을 맡긴다는 점에서, 이 장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운전석에서 물러났다는 것은, 조종하려던 삶에서 한 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미사키는 그를 대신해 길을 운전하지만, 그 안에서 가후쿠는 스스로 내면의 ‘길’을 찾아 나선다.

미사키 또한 과거의 죄책감과 상처를 안고 있지만, 서로의 고백을 통해 두 사람은 조금씩 자신을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고통이 흘러가는 통로, 감정의 순환로가 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상처는 어디에 머무는가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산다. 어떤 상처는 외면하려고 해도 자꾸만 돌아오고, 어떤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런 상처에 대해 묻는다. “그 고통을 억누르지 말고, 함께 태우고 가면 안 될까?”라고 말이다.

이 영화의 힘은 강한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조용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삶의 본질을 관통한다. 인간관계의 복잡함, 용서의 어려움, 그리고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얼마나 긴 여정인지를 보여준다.

나의 이야기와 닿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우리가 지나온 과거 속에도, 쉽게 말하지 못한 진심과 놓쳐버린 관계들이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기억들이 마음 한구석에서 나를 지배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런 나에게 “그냥 같이 가자”고 말해주는 듯한 영화였다. 외면하거나 억지로 떨쳐내기보다, 그 상처를 안고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보라는 메시지 말이다.

결론: 치유는 말이 아닌 ‘이동’에서 시작된다

상처는 어딘가에 정지된 채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함께 움직이고, 흐르고, 흘러가며 비로소 치유의 자리에 이른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너의 상처도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그리고 어쩌면 그 말 한마디가, 우리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