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은 아주 조용한 영화입니다. 거대한 사건도, 극적인 전개도 없습니다. 하지만 연인 사이의 '여행'이라는 익숙한 상황 속에서 삶과 관계의 본질을 조용히 되물음으로써,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는 7년째 연애 중인 ‘지현’과 ‘수현’이 서울에서 춘천으로, 또 강릉으로 이동하는 여정을 따라갑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여행이지만, 그 여정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간극과 삶의 방향 차이를 마주하게 됩니다.
1. 여행, 관계의 ‘거울’이 되다
《초행》의 중심은 ‘여행’입니다. 하지만 이 여행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숨어 있던 균열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지현은 부모님을 만나러 가고, 수현은 그를 동행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장소를 향해 가면서도 서로 다른 감정의 지점에 도달합니다. 말은 섞지만 마음은 빗겨가고, 가까워지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아이러니.
2. 여성의 시선으로 본 '삶의 선택'
영화는 특히 ‘지현’의 내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결혼, 임신, 가족, 직업에 대한 질문이 그녀에게 끊임없이 던져지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그 선택의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결혼은 왜 해야 하지?” “아이를 낳아야만 가족일까?” 《초행》은 그런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회적 관습에 대해 작은 질문을 던지고, 여성의 삶이 어떻게 타인의 기대와 충돌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3. 말 없는 거리, 감정의 간극
김대환 감독은 의도적으로 인물 간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화는 일상적이고, 갈등은 폭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정적이 오히려 더 큰 긴장과 불편함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자동차 안에서 두 사람이 침묵 속에 앉아 있는 장면, 낯선 숙소에서 같은 침대에 누워 있지만 서로를 마주보지 않는 장면은 관계의 균열을 강하게 체감하게 만드는 영화의 감정적 클라이맥스입니다.
4. 초행, 끝인가 시작인가
영화 제목 ‘초행’은 말 그대로 ‘처음 가보는 길’입니다. 연인 사이의 첫 가족 방문이기도 하고,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이 함께 가는 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 두 사람이 같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초행》은 그런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습니다. 명확한 해답은 없습니다. 그저 각자의 선택만이 있을 뿐입니다.
💬 마무리: 조용한 질문, 깊은 울림
《초행》은 관객에게 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한 시선과 거리 두기를 통해, 더 깊은 성찰을 이끌어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삶의 궤적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곱씹게 합니다.
이 영화는 말합니다. “가까워 보이는 두 사람도,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때때로 슬프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초행》을 어떻게 보셨나요? 관계 속 거리와 선택, 그리고 자신의 길에 대한 생각을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